── 요요없이 잘 유지되고 있으시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료와 더불어 케이크나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하는 가운데 저는 원래의 식생활로 돌아가지 않고 10키로 감소된 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식습관을 바꿨어’라고 자주 질문을 받는데, ‘바뀌지 않는 것은 기억에 방해를 받기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설탕 덩어리야!’, ‘당뇨병의 근원이야!’, ‘유기농이었으면 좋겠는데’라고 반사적으로 판단하거나, ‘나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먹는 것은 기억에 사로잡힌 채일 뿐이기도 하고, 나쁜 딱지가 붙인 케이크가 불쌍하지 않나요?
── 누구나 항상 판단을 하곤 하죠.
순수하게 기쁘다! 행복하다!는 마음이 아니라, 자책이나 선악의 꼬리표로 기억을 쌓으며 먹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화로 제로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약도, 병원도 필요없다’라고 지레 짐작하기 전에 스스로가 공포를 안고 있지는 않은지, 단정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 첫번째 스텝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화를 통해 영감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고혈압 약을 복용할 때도 정화를 하며, 약에 말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약이 ‘나도 같이 정화할게. 고혈압의 기억으로부터 당신을 해방시키고 싶으니까’라고 말해주어 사이좋게 될 수 있었습니다.
── 호오포노포노에서는 모든 것에 정체성이 있다고 하는데, 약도 그렇군요. 무엇보다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과 반응을 먼저 제대로 아는 것이 첫 걸음.
그것이 두려움이나 단정이라도 나를 탓하지 않고 네마디 말로 해방시키는 것. ‘이 약은 무섭다’ 혹은 ‘이것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판단도 우선은 정화네요.
맞습니다. 진찰을 받거나 수술이 필요할 때도 있겠죠. 그럴 때 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정화를 합니다. 그러면 눈 앞의 의사나 치료를 통해 영감이 나타납니다. 당신 자신이 의료 종사자나 치료사라면 정화를 함으로써 내면의 영감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고 환자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정화를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대하는 방식이 전혀 달라집니다.
──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의 신성(神性)과 스스로의 신성을 의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감정에 휘둘리는 경우도 많아서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나 기억에 동요하고, 대처하고, 통제하고 싶어지니까요. 거기서 알아차리고 정화를 하는지 아닌지, 차이는 그 뿐입니다. 모르나가 자주 했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호오포노포노의 진수는 자기 안에서 신성을 찾는 것. 그 때문에 내면을 마주하고, 표면의식으로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하며 신성에 탄원할 뿐이야’ 커피에도, 숟가락에도, 테이블에도 모든 것이 신성이 깃들어 있고 신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것. 자기(自己)란 ‘모든 것’입니다.
──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 받은 영감을 믿는 것이 열쇠가 될 것 같네요.
고(故)모르나도 매 순간마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했습니다. ‘자신을 우선시 하다니 이기적이다’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사람이나 사물이나 모든 것이 평행하고 완벽한 존재인데 ‘문제’를 겪는 것은 자신의 안 쪽에 ‘이런 기억의 얽힘이 있다’고 나타내는 사인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기억과 기억의 얽힘에서 발생하는 것이죠. 선악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히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매듭의 절단을 탄원하는 것이 정화입니다.
── 관련해서 ‘인연’이라는 개념과 함께 결연과 절연이라는 두가지의 관점도 있죠.
인연이라는 것은 신성이 주신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 인연을 끊고 저 사람과 연을 맺어!’라는 기대, 명령, 획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서 생겨나는 것을 보고 용서하고 탄원해 변환에 맡기는 시점을 더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신성의 에너지가 변환해주는 흐름에 맡기는 것이 바로 정화이니까요.
예를 들어 ‘아픈 딸을 위해 몇 년동안 정화를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기르던 개가 한 쪽 다리를 잃고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정화를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죠. 기분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떠한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 안의 무엇인 원인으로 나의 개가 이런 일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라고 반성하는 것.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자신을 용서하고, 신성에게 탄원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항상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죠. 무심코 바깥으로 정신이 팔려버리니까요.
누구나가 그렇죠. 아끼던 차의 엔진이나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럴 때야말로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엑셀이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 당신이 안고 있는 무언가가 자동차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주요소에서 급유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당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정화하지 않으면 기억이 전부 차에 쏠려 버리니까요.
── 음식에 딱지를 붙여 판단하는 이야기처럼 상대가 어떤 존재라도 제로로서 관여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네요. 어려운 포인트를 많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