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의문. 이것이 있을 때 우리들은 정화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판단, 의문. 이것이 있을 때 우리들은 기억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정화는 실천할 것인지 아닌지 단지 그 뿐입니다. 정화를 실천하고 있을 때는 정화될 것이고, 정화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판단을 한다면 실천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호오포노포노의 클래스에서 강사들이 빈번하게 묻는 것 중에 ‘흐름의 속에 있을 것인지, 아닌지’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여러 크기의 기억을 지워감으로써 우리들은 신성한 존재의 흐름, 완벽한 흐름 속에 있을 수 있게됩니다.
흐름 속에 있을 때는 마치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나아가는 것과 같아서 우리들은 그 운동에 의문을 품거나 판단을 하지 않고 그저 그 안에서 생명을 움직이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다시 나타났을 때, 우리들은 그것에 의문을 품고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정화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때에도 자유롭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고를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