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자신이 어떠한 상태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최근 10년간 ‘사랑’이라는 말을 전세계의 모든 곳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가족과만 나누는 친밀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신문이나 뉴스에서도 ‘사랑’이라는 말이 들립니다.
그것은 어떤 일정한 가치기준이나 개인 인생의 지표를 가르키는 것으로써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또는 세계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분쟁이나 분단의 해결에 ‘사랑’이 필요하다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잠시 서서 자신을 반성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사랑’을 외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랑’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사실은 어떠한 체험, 몸의 감각, 생각이 있는 가를…
최근 호오포노포노 클래스 중에서도 어떤 여성 분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직 어린 딸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학교로 몇 번이나 불려가 문제를 느끼고 있다. 힘들어하는 딸을 위해 정화를 하고 싶다. 왜냐면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니까.”
그리고 실제로 정화를 했겠지만, 그 때 저는 그 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까? 아니면 괴로움을 느끼고 있나요?”
그 여성분은 ‘괴롭다’고 답했습니다.
솔직하게 괴로워하는 어머니에게서 우리들은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사랑인가 기억인가’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들은 금새고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을 위해 괴로운 선택을 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간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기억이 재생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딸의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가 체험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는 사랑이 아닌 괴로움이었습니다.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 자신이겠죠.
우선은 스스로가 기억에서 자유로워져 사랑을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딸이 괴로워하고 있는 상황을 통해 다시 괴로운 것은 자기자신이니까요. 우선은 자신을 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우리들은 인간관계에 있어 여러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신성한 존재의 역할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고 있다면 우선은 자신이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통해 아이도 사회도 자유를 되돌릴 수 있습니다.
평화
넬로 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