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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본보기가 되는 것’


── 아이린씨는 방송국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제작 프로듀서를 30년 째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전세계 어디에 있든 기존의 가치관이나 교육 시스템 속에서 갈등을 겪고 잇는 아이들이 늘고 있지는 않을까요? 먼저 어린이와 관련된 정화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저도 딸과 아들이 있어 똑같이 힘들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 시스템의 신구(新旧)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상황에 대처하려고 하는지’ 정화를 통해 디비니티에 완전히 내어주고 맡기는 것인지 두 가지의 선택으로 정화는 후자가 되겠죠.

── ‘이 문제는 교육 시스템이 낡은 탓이다!’가 아니라 자기자신이 안고 있는 감정이나 사고를 반성하고 지우는 것으로 열리는 현실을 걷는 것이 정화였죠.

부모로서 걱정거리는 아이가 몇 살이 되어도 끝이 없죠. 예를 들어 아들이 장거리 운전을 한다고 들으면 교통사고의 불안이 생기게 됩니다. 딸 부부는 방콕에 있어서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지 얼굴이 보고 싶어지고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항상 솟아납니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정화를 하면 되기 때문에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원래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지 않고, 제 언동이 본보기가 되도록 자기자신을 지도해야함을 유의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조가 호오포노포노를 알게 된 덕분에 더욱 간단하고 편해졌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혼을 하고 싱글 맘이 되어 아이들이 키우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에 진학시키지 못하는 제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화 덕분에 둘 다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얻게되었습니다. 아들은 사회인을 거쳐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쨋든 가족과 함께 철저하게 정화함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개개인의 정체성에 적합하 길이 열리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 어떻게 ‘가족’을 정화했나요?

알고 있는 가족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으며 정화를 했습니다. 이탈리아계의 혈통도 있어 그쪽의 친척들도 포함했고, 전 남편의 가족에 관해서도 부모님과 형수를 비롯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정화했습니다. 전남편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낸 것을 저였기 때문에 그와 그의 가족에게 상처를 준 생각, 안고 왔던 여러가지 생각들, 특히 부정적인 것들을 수 년에 걸쳐 정화함으로써 이제는 상처를 줄 만한 생각을 전혀 갖지 않고 서로의 관계에 평화와 사랑과 감사가 싹트고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혼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게되다


── 정화를 통해 내면에 평화가 만들어짐으로써 현실도 따라서 평화로워지죠. 마치 제 일인것처럼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혼을 해서 제 자신을 마주하고 정화를 하며 중간중간 진흙탕 싸움이었던 적도 있지만 평온한 친한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될 수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얽매었던 기억 등 떠오르는 온갖 방대한 기억을 정화했죠. 왠지 가부장제도의 정점에 군힘하고 있는 듯한 전형적인 남성과 만날 기회가 있었을 때에도 ‘아무것도 외부에는 원인이 없어’라며 스스로를 타이르고 계속 정화를 했습니다.

이혼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더라도 놓아두고 지우고 싶은 것은 그와의 사이에 있는 과정이나 기억이죠. 그 본연의 정체성과의 연결까지 잃고 싶지 않을 뿐더러, 본래 있어야 할 관계성을 구축하고 싶으니까요. 명확해질 때까지 정화를 해야겠죠.

── ‘이혼’이라고 하면 싸움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끝나기 쉬운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다움을 살기 위한 선택이었던 거죠.

결혼제도의 근저에 있는 기브 앤 테이크로 조건부 혼인관계와 감상적인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인데 그것을 잃는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난 당시에는 서로를 매료시키는 과정이 작용하고, 함께 있어 편안할 수 있을 것 같아 결혼을 해도 일상에서는 근저에 기대라는 과정이 작용합니다. 저는 특히 ‘기대’를 정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탈리아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인 전 남편에게 달려들어 바로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굉장히 큰 에고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에고를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바깥 쪽으로 계속 요구했습니다.결과적으로 이기심이 없던 그에게도 이기심을 채우라고 요구했고, 그에게 상처를 주어 파탄났습니다. 당시에는 그의 존재의 의미도 몰랐고, 나와 아이들에게 주려고 했던 사랑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도, 먹을 수 있는 것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혼을 결정하고 뭐든지 내 힘으로 해나가는 거야!라고 벼르고 있었지만, 이혼을 한 뒤로 30년이 지나고 저야말로 이기심에 눈이 멀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화가 진행된 지금은 그가 나에게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주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통하는 친구로서 매주 만나고 있으며 연락도 자주 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고령이고 지병도 있기 때문에 항상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도 하고요. 아이들을 포함해 하나의 관계성이 생겨 삶의 일부가 되어 간 것입니다. 단 몇 년 만에 이런 관계성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 멋지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Irene Schwonek(아이린 슈워넥스) 2009년 처음 호오포노포노 클래스에 참가하였고, 현재는 독일에서 클래스를 개최하고 있다. 뉴믹스의 민족 방송국의 어린이 채널에서 오랜시간 프로듀서로 활동하였으며 동시에 작가, 로미로미 테라피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다. 아이린 슈워넥스의 인터뷰 기사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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