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소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TV나 온라인 뉴스를 보는 습관도 없고요.
몇년 전이지만 강연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1주일 정도 같은 호텔에 묵었는데, 친절하게도 요청하지도 않은 영자신문을 매일 아침 문 앞에 두고 가주었습니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신문을 펴본 일은 없지만 문 앞에서 주워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커피를 마시려 책상 의자에 앉아 아무생각 없이 손에 걸린 신문의 1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 순간까지의 저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이 저를 휘감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상태를 말로 표현하자면 ‘Odd(이상한)’가 딱 맞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감각을 느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1면에는 특히나 큰 글자가 적혀있었는데, 큰 화재나 전쟁에 대한 뉴스라기 보다는 확실히 주식과 관련된 것이었고, 당시 저는 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뉴스를 보자마자 우울증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 의식도, 몸도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거기에서 정화를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고(故)모르나 여사가 반복해서 이야기해주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
지식을 채우기 위한 독서
돈을 불리기 위한 투자
현명한 삶을 위해 뉴스를 읽는 것
우리들은 매일 여러 이유를 붙여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지만, 그 표면적인 원인과 결과에는 또 다시 여러 기억이 겹겹이 쌓여있습니다.
글자, 단어, 일어난 일을 통해서 우리들의 지식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정보는 1초에 15비트이지만 잠재의식에는 1,100만 비트나 되는 정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보게된 뉴스의 글자를 통해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자각을 하고 있는 순간, 잠재의식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비극, 불안, 상실 등을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표면적으로 풍요로워지려고 하는 순간 무방비인 내면의 아이에게는 허용범위를 넘어선 두려움을 주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뉴스를 안보는 편이 좋은건가?
신문을 읽지 않도록 해야할까?
그것은 스스로의 판단입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을 할지도 정화해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화를 한 후에 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정화를 한 후에 사람을 만나고
정화를 한 후에 운동을 하고
정화를 한 후에 핸드폰을 보는 것.
준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등산도, 서핑도, 여행도 모두 무언가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호오포노포노’이죠.
인생이 꽤나 잘 풀려 왔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운세가 안좋다.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작은 일로 관계가 악화되었다.
좋은 투자라고 생각했던 토지가격이 폭락을 했다.
작은 일부터 큰 것까지 경제적인 이유, 가족의 이유, 시대적 움직임이 이유가 아니라 어쩌면 우연히 본 신문의 첫 페이지에 쓰여있던 글자가 기폭제가 되어 어떤 기억을 재생시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화재나 다른 나라의 정치적인 사건들, 유명인의 가십, 길어지는 전염병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까지 혼자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눈 앞에 놓여있을 때, 우리는 흐름에 타지 못하고 해결을 하기 위해 매달리면서 부서진 자석처럼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원인을 찾을 때, 즉 정화를 통해 체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 자유는 자신이 걷는 길로 돌아올 것입니다.
평화
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