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의 정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분이 많습니다.
토지 정화도 사람의 정화와 같나요?
토지를 한 명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알기 쉬울 것같습니다. 예를들면 토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주소나 등록번호, 임대계약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주소 뿐 아니라 그 토지의 주인이나 부동산도 있겠죠. 이런 것들을 모두 정화합니다. 중요한 점은 토지에게도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들의 인생보다도 훨씬 긴 역사가 말이죠. 마약이나 살인의 역사를 지고 있는 토지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문제를 알게 될 때에 정화를 해갑니다. 모든 것에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전부터 이야기하고 있지만, 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서가 있으니 구매했다고 해도 ‘이게 내 소유물이야’. ‘내가 소유자야’라는 것은 오만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짧은 기간 그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 선택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토지를 존중하고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자식관계나 대인관계와 동일하죠.
── 토지도 인간관계도 각자의 정체성에 마주하고 돌본다는 것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는 중에 만약 문제가 보인다면 정화입니다.
문제를 느낄 때 그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은 당신이니까요.
── 어떤 때에도 그 원인은 내면에 있다는 것이네요. 그러고보니 전에 KR씨가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죠. KR씨 자신은 ‘어떤 말을 들어도 사랑합니다라는 대답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에 힌트가 숨어있다고 느꼈는데요. 생활이 정치에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화하고 계신가요?
당신이 ‘정치나 법에 우리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화합니다.
── 어머, 거기서 부터 인가요?
네,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외부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구분을 짓고 ‘모두 나 자신이다’라는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죠. 몇십년도 더 된 일이지만, 이웃사람의 개가 매일 아침밤 일부러 제 주차장에 와서 볼 일을 봤었습니다. ‘불평을 해야겠네’, ‘쪽지를 써서 보내볼까’, ‘냄새나’ 등 정말 많은 감정들이 들끓었지만 ‘무엇도 그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정화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래도 문제는 계속되었죠?
괴로움을 토로하러 가지는 않았나요?
물론 그랬죠. 불평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니까요. 하지만 몇 번이고 불만을 말해도 ‘어머? 그래요? 우리 개가?’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수 년째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어 너무 화가 났지만, ‘외부에 원인이 있지 않으니’ 스스로 다시 정화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디비니티(신성)가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훈련이다’, ‘이것이 정화됨으로써 경제가 순환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사회의 가치관이 이렇다’는 것도 무엇도 그 원인은 바깥에 있지 않으니까요.
── 역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말고는 없네요.
당신의 의식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면 그것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는 사람과 길을 걸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아는 사람이 갑자기 ‘지금 불쌍한 노인이 지나갔는데, 봤어?’라고 말했었죠. 저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기에 있잖아’라고 가르켜도 제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죠? 하지만 기억이란 이런 것입니다. 당신에게 보여지는 것은 당신의 내면에 있는 기억인 것입니다.
── 여러가지 일들이 제 주변 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듣고 보고 있자면 감정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 것들도, 개인적인 것들도, 어떤 것이든 마주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지성(知性)이 ‘나는 이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어’, ‘저 사람이 나빠’라고 말하는 것은 빨간 신호입니다. ‘외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에 반응하게 된다면 정화. 항상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겸허한 곳에서부터 정화를 하고 싶습니다.
── ‘100% 나의 책임’이라는 태도가 정화에서는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 의미를 확인해도 될까요?
이웃의 개와 관련된 일화를 예로 들면, ‘개의 주인이 별로’라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잠재의식 중의 어떤 기억으로 인해 개가 거기에서 볼 일을 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것을 정화하고 싶은 것입니다. 정화로 인해 무엇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개의 주인이 나쁘다거나, 사회의 가치관은 이렇다거나 한다면 미로와도 같은 인생의 데드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그보다는 역시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 조건반사처럼 ‘외부에 원인이 있다’고 치부해버리는 제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기본, 언제나 초심으로 있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